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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민관
출처: 인디안 밥

온라인에 구축돼 있는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은 사실 현장을 반영하는 아카이브 체계이기도 했고, 오프도시는 그러한 영상들을 물리적으로 보관하고 볼 수 있게 열어 놓은 전시장이자 영화관이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장과 전환이 시도된 가운데 독립 실험 라이브 필름들의 마니아 소비 계층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골방 같은 공간은 보통의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의 냉랭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들어서자마자 큐레이터와 안면을 마주하게 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상 앞에 앉아 내 방 같이 편안하지만, 발을 들여 놓는 데 수 초의 당황스러움이 오가기도 했었다.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작은 공간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소정의 이천 원이라는 대여료를 내고 영상을 볼 수 있지만, 영상보다는 가끔 열리는 전시 등의 오픈이나 오프도시의 자체 기획 프로그램들이 열리는, 즉 별도의 초대 일시가 지정될 때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래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이 홍대 안에서 주목하지 못하거나-그것이 정보의 부족이든, 다른 감각의 예술 형태에 대한 인식의 부재이든-내지는 독립예술의 미디어 아트나 비디오 자체에 대한 향유 계층이 오프라인상으로 특정하게 더 드러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진단을 조심스레 내려 본다. 이는 그래야 된다거나 그렇지 않아 문제라는 식의 단순한 문제의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오프도시는 약간은 블로그 형태를 더 닮아 있는 사이트 안에 진행된 프로그램에 대한 즉각적인 뉴스 형식의 기록을 빠뜨리지 않고 있고, 이는 오프도시의 현재적 위치를 반성적 고찰을 통해 검토할 뿐만 아니라 대관 형식의 프로젝트가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과 공간이 주고받는 작용을 중시하고, 무엇보다 단지 물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닌 매개와 소통의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처음부터 진지하게 모색하고 간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의 연장선상에서 그 의미들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그때그때의 홍보는 조금 더 많은 웹채널에서 정보의 ‘다량 이식’이 충분한 사전 기간을 통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긴 하다. 이 공간의 활성화의 문제는 어쨌든 홍보 장치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홍대 문화 소비의 일상적인 패턴에 대한 조사에서부터 면밀히 검토될 문제이다. 가령 지금은 ‘커피프린스’가 있는 거리로도 인식이 되는 주로 작은 옷가게들이 즐비해 있는 거리에서 걷고 싶은 거리의 꺾어 들어가 비교적 초입에 있는 지점에서 티케라는 까페가 보이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곳에 오프도시는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옷들을 둘러보며 그냥 이곳을 무심히 지나갈 것이고, 그런 홍대라는 문화 지형 안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거리 소요(逍遙)를 조사하는 식으로 홍대 문화 지형을 조망하고 그 소비의 패턴을 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카이브 측면에서 라이브 필름은 현장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영상을 통하지 않고도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다. 반면 다양한 미디어가 부각된 영상들은 그것을 스크린의 장치를 통해야 한다. 이미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에는 그것들이 웹상에서 볼 수 있도록 정보가 구축되어 있고, 마치 유투브와 같이 사용자 중심으로 영상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볼 수 있다. 반면 오프도시는 라이브 필름이 시연되고 DVD형태로 비디오들이 소장되어 있다. 즉, 오프도시는 라이브 필름이 상연되는 안정적인 공간이 마련됐다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컴퓨터상에서 비교적 작은 화면의 비디오를 프로젝터나 휴대용 재생 장치를 통해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작가들의 네트워크 장이나 카페로서의 역할 역시 같이 가져가고 있다.

리고 공간이 문을 열 때 비디오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작년 12월에 <추락천사 페스티벌>에는 각종 공모전 등에서 문턱을 넘지 못한 작품들을 상연했고, 이는 다양한 독립/실험 비디오 작가들의 욕망을 소환하는 흥미 있는 탈중심화의 장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또 DVD로 쌓여 갔다.

이번에 라이브 필름의 시연과 그것의 DVD 제작은 또 다른 형태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전의 DVD가 무색의 케이스에 꽂힌 CD이었다면 이제는 작품에 대한 소개나 정보가 기록된 온전한 영상물로서의 제작까지의 과정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작가들의 개성이나 스타일을 판단하고 좋아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가 가령 책을 고를 때 머리말을 보는 것처럼 DVD케이스의 설명과 이미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언어적인 짧은 소개는 사실 그 작품에 다가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매개의 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 라이브 필름을 만드는 작가들의 모집을 거쳐 6월 17일, 정강 작가부터 출발하여 이후 석성석 작가가 다음 타자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는 2주 간 각자 할당받은 시간 동안 설치와 전시 그리고 관객들을 만나는 장을 만들어 가며 중간 중간 잠시 동안의 공백과 교체를 하며 마지막으로 12월 20일부터 하는 최은하 작가의 전시까지 올해 계속해서 진행되게 된다. 

이 작업들은 모두 출판의 형태로 기록되는데, 석성석 작가의 live Film_Spiegelung DVD와 마찬가지로 DVD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들의 개성 어린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이 만들 일종의 소규모 출판 시장이 보통의 DVD 소비 시장에서 내지는 책과 같은 출판 시장에서 어떠한 틈입하여 미세한 지각 변동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문득 그것과 마주친 사람들에게 생소함과 시야를 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설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온라인상의 아카이브와 실재적 출판의 형태는 분명 다르다. 인터넷의 블로거 글들을 요즘 책으로 만드는 게 하나의 유행적 추세라고 하지만, 온라인의 휘발적인 느낌과 책의 단단한 질감은 전혀 다르듯 DVD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본다.

석성석 디렉터의 말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채널에겐 출판 형태 결과물의 판매를 통한 경제적 피드백으로서, 예술 창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술 작품이 사회 안에서 배포되는 방식과 예술가의 생존 방식을 실험해 보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DVD는 각 작가들 작품의 개별 기획 출판과 함께 전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통합 출판의 형태 두 가지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전자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집이라면, 후자는 하나의 결을 가진 홍대라는 곳에 모인 작가들의 동시대적 아카이브 성격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제의 필름 형태를 다수의 복제 작업을 통해 과정을 기록하는 측면과 결과를 담는 것은 작가 스스로에게도 기록에 대한 것을 염두에 두고 절차와 과정에 신중하거나 창작에 대한 과정을 더듬어가는 의식적인 작용을 끼치고, 공정에 대한 실재적 음미 이후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결과만 내뱉고 마는 게 아니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고찰 을 함께 가져가고, 작품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수용자의 입장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참고로 UAC는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undergroundartchannel)의
약자이고, Fabrik은 공장(factory)의 독일어 형태이다. 이는 이 프로젝트가 작품의 결과물 자체에만 주목하고 심미적 감상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생산 방식이나 전반적인 과정을 포함하고, 결과적으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는 시장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겠다.

<개요>
UAC-Fabrik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 릴레이 쇼_프로젝트의 방향성
일시 : 4월 24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 홍대 앞 오프도시OFF ℃
대상 : 프로젝트 참여작가, 채널 작가 외 온/오프라인 아트 커뮤니케이션 및 언더그라운드 아트채널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
내용 :
1부/pm.6:00-7:00, live Film_Spiegelung DVD 프레젠테이션
2부/pm.7:10-8:30, 09 릴레이쇼 프로젝트 워크숍

필자소개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

원문보기_
http://indienbob.tistory.com/entry/오프도시-UAC-Fabrik-둘러보기-1-2009-릴레이쇼-프로젝트-워크숍

Posted by offdoci

                                                                                흑표범 퍼포먼스 ‘부름'(사진_최병현)


21세기 버전 ‘신 (新) 고도를 기다리며’
추락천사 페스티벌 오프닝 퍼포먼스 ‘부름’에 대한 상념들

박태린 (자유기고가)

중절모를 쓰고 긴 코트를 입은 노파 분장의 퍼포머가 기둥에 묶인 의자에 앉아 있다. 의자 앞 탁자에는 우유가 들어있는 잔과 밀가루를 담은 접시가 있다. 퍼포머 건너 편 다른 탁자에는 모니터가 있다. 암적 속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퍼포머는 스크린에 비춰진 전화를 받으러 달려가려고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이 기둥에 묶여 있어 갈 수가 없다.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리고 퍼포머는 입고 있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퍼포머가 외투를 벗자 그 속에 다른 옷이 있다. 그 옷을 벗자  또 다른 옷이 있다. 하염없이 옷을 벗으려고 발버둥치는 퍼포머. 이 모든 옷들이 기둥에 연결돼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차분하던 퍼포머의 옷을 벗는 동작은 점점 거칠어진다. 비명을 지른다. 발버둥치는 동안 탁자가 쓰러지면서 탁자 위에 있던 우유가 쏟아지고 접시가 떨어지면서 밀가루가 바닥에 쏟아진다. 전화벨 소리는 끊임 없이 울린다. 퍼포머가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벗고 전화를 받으려고 달려가자 그 전화를 누군가 받아 버린다. 이 때 다른 탁자위에 놓여있던 모니터에 퍼포머의 나체가 투영된다. 가슴과 성기가 크게 확대된다. 자신의 몸을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 ‘노파의 얼굴에 여성의 몸’을 한 퍼포머는 화들짝 놀라며 옷을 주워 입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퍼포머는 굶주린 동물의 소리를 내며 바닥에 쏟아진 밀가루를 급하게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모니터에는 이제 관객들의 얼굴이 투영된다.


               
기둥에 묶여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여러 겹의 옷을 입은 채 ‘부름’을 기다리며 평생 동안 늙어온 듯한 이 노인은 일평생 전화벨 소리만 기다린 듯 보인다. 마치 사무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케 하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 흑표범은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표현된 언제 신이 올지 또 그 약속을 지킬지 모르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인간과 작가 흑표범이 연기한 전화벨 소리를 기다리며 누군가로부터의 ‘부름’에 목마른 여인의 몸을 한 노파의 모습은 어딘가 너무 닮아 있다. 이런 점에서 흑표범의 퍼포먼스 ‘부름’은  미디어와 행위를 섞어 만든 ‘21세기 버전 고도를 기다리며’ 쯤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20세기 버전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은 신을 기다렸다면 21세기 버전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은 환영으로 투영된 전화기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 환영이 실재처럼 자신과 교감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흑표범이 기다리는 ‘그’는 아마도 신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흑표범은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이 창조해낸 이미지가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작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즉 작가 자신의 ‘예술적 또는 미학적 이상’이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그를 잘 소비해 주어야 한다.



작가는 그렇게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맹목적으로 몸부림친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다가가기 직전 작가는 관객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관객의 시선과 맞부딪치게 된다. 관객들은 아마도 대중 앞에서 발가벗겨진 예술가의 ‘속’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흑표범은 그러나 ‘예술을 소비하는 당신들 역시 그 시스템과 메카니즘에 의해 소비당하고 있다’고 역설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벌거벗은 몸이 생중계로 무대 위 모티터에 투영되는 동안  이 모니터를 지켜보는 관객을 바라보는 퍼모머의 날카로운 시선과 관객의 시선이 아주 잠깐 동안 교차할 때 절정에 달한다. 아마도 이 순간이 21세기 버전 고도를 기다리며의 노른자이리라.

제 1회 추락천사 페스티벌의 오프닝으로 기획된 흑표범의 퍼포먼스 ‘부름’은 ‘낙선전’의 의미를 적절하게 잘 표현해 냈다. 예술가들이 평생을 바쳐 믿는 ‘그’는 누구일까? 예술가들은 ‘그’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예술가들은 잠깐이라도 ‘그’를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과연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작가 흑표범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필자는 예술가들이 평생 동안 기다리는 ‘그’는 ‘미학적 완성’이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예술가의 고향은 예술사”라고 분명히 말한 것처럼, 예술가에게 미학적 완성이란 자신이 그렇게 속하고 싶었던 망향, ‘예술사’에 속하는 것이다. 즉 이 더럽고 추잡스러운 육신의 고향을 떠나 영원히 꿈꿔오던 ‘예술사로부터 시민권을 얻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이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다.



예술사로부터 시민권을 얻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길에서 예술가들은 낙선의 쓴 맛도 본다. 또 좌절한다. 단맛을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단맛이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쵸코렛과 사탕으로 만들어진 ‘마녀의 집’처럼 예술가가 가던 길을 잃고 살만 찌워 누군가의 먹이가 되게 할 수도 있다. 예술가의 고향인 예술사가 쵸코렛과 사탕으로 멋들어지게 꾸며진 궁전일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만약 그 궁전을 그가 평생 동안 찾던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쵸코렛과 사탕을 소비하고 또 살찌워진 자신의 육신을 누군가에게 바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낙선예술가들은 아름답다. 이들은 아직 이 성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지나쳐 간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낙선 예술가들은 아직 좌절의 쓴 맛을 보며 예술사로부터 시민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추락천사 페스티벌 홈페이지 http://uac-angel.tistory.com/
오프도시 홈페이지 http://www.offdoci.com
페스티벌 문의: 070 7555 1138

Posted by offdoci

공공앨피 (00LP)의 ‘투발루 인 서울’ 프로젝트에 대해
오프도시 스캐너 기자

        '투발루 인 서울’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후 관객의 질문을 받고 있는 00LP(문명기, 고판이)
 
예정된 시간보다 다소 늦은 26일 저녁 7시 40분 경 홍대 앞 오프도시에서는 흥겨운 통기타 반주에 맞춰  귀농 음악가 ‘사이’의 노래가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다. 공연 중간에 사이는 공공엘피(00LP)가 사라져가는 섬 투발루를 소재로 작업 중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스트 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스트 섬이 멸망한 이유는 최후의 나무 한 그루 까지 벌목하며 서로 경쟁하고 약탈한 섬 종족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터 섬은 칠레의 해외 영토로서 둘레 60km, 길이 23km, 최대 폭 10km의 직삼각형 모양의 섬으로 걸어서 30분이면 섬 둘레를 돌 수 있다고 한다. 이 섬에 최초 정착한 사람들은 AD 380~400년 경 폴리네시안 인으로 그들이 이 섬에 도착 했을 때는 나무가 우거지고 육지에 조류들도 많았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에 풍부하였던 섬의 생명체는 모두 멸망했다.  바로 인구증가에 의한 환경파괴와 숲의 파괴 그리고 종족 간에 상대방의 석상을 파괴하는 행위 때문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거대 석상 ‘모아이’로 더 잘 알려진 이스트 섬은 그렇게 몰락했다.

‘먹을 만큼만 농사짓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겠다’는 귀농 인디음악가 사이의 아나키스트적인 노래 가사와 이스트 섬의 이야기에 이어 공공앨피의 ‘투발루 인 서울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먼저 공공맬피 맴버 고판이 작가가 공공앨피와 투발루에 대한 소개, 그리고 공공앨피의 절망시장을 비롯한 이전 작업을 소개했다. 이후 문명기 작가가 ‘투발루 유전 여행기’를 소개했다. 

투발루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약 50년 후에는 바다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다. 공공앨피는 2년 전 지구온난화에 의해 사라져가는 섬나라 ‘투발루’를 알게 됐고 ‘사라짐’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죽기 전에 꼭 투발루에 가고 싶다”는 내용의 ‘절망시장’ 작업이 보여주듯 공공앨피의 활동은 최초에는 다소 낭만적으로 시작됐다.  온라인 상에 동호회를 만들어 지구온난화와 투발루에 대해 토론하고 오프라인 상에서는 홍대 앞 놀이터 희망시장 옆에서 ‘절망시장’을 열고 작품부터 생활용품까지 팔수 있는 물품을 가져다 ‘투발루 여행자금’을 마련했다. 절망시장에서 공공앨피의 중고물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투발루’에 대해 들어야 했다. 공공앨피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발루인들을 동정하고 지구 온난화를 비판’하던 공공앨피의 생각은 “우리 모두는 투발루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진화한다. 고판이 작가가 이야기 하듯 “투발루인들이 물에 잠기는 그 순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간접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듯 우리도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이 파괴될 때까지 이산화 탄소를 내뿜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드디어 공공앨피는 투발루로 유전여행을 떠났다. 거금 400여만 원의 여행자금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맴버 문명기만이 여행을 떠나고 고판이는 여행자금을 후원했다. 문명기 는 투발루로 가는 길 “나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셔츠를 입고 그가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질문을 영상카메라에 담았다. 또 투발루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는 투발루와 실재의 투발루인들의 삶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된다. 그는 ‘수 만개의 별이 쏟아지는 호텔’이라 불리는 공항활주로에서 잠을 자고 간판 없이 운영하던 한 식당에 직접 간판을 만들어주고 또 물이 불어난 도로 위를 오토바이를 타고 어린아이처럼 질주하는 투발루인들을 바라보며  투발루인에게 더욱 가까워졌다.

공공앨피는 현재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자료집과 투발루 여행기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보고전의 형태로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공공앨피는 처음 ‘죽기 전에 투발루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 ‘투발루에 다녀왔다’ 그것도 프로젝트 팀 맴버 반쪽만이. 공공앨피의 작업이 재미있어지는 순간이다.  공공앨피는 왜 투발루에 가려했을까? 투발루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라져가는 섬 나라의 사람들을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고 환경파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이들 두 명 예술가의 몫이 아니다. 이들의 역할은 ‘투발루’라는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를 통해 투발루를 모르는 모든 이에게 ‘우리도 투발루인’임을 사유하게 하는데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반도에 살고 있는 나는 경쟁과 소유를 위해 오늘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있는가?”

공공앨피의 투발루에 대한 ‘사유와 탐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어떤 목적지에 도착할지 궁금하다.

 

Posted by offdo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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